살아가는이야기

사라져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산책

offscape 2024. 11. 9. 20:53

 

2024년 2월경 포스타입에 적었던 글을 옮김

 


제목을 타이핑 하고 나서야 세상 모든것은 사라져가고 있었구나 라는 진실이 낡은 서랍장에서 새어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잿빛으로 물든 진실을 주섬주섬 주워담으며, 내 곁에서 사라져간 풍경들을 떠올려 본다. 학교를 마치고 터덜터덜 걷던 구불구불한 골목길, 낡은 놀이터 구석에서 피어난 빨간 뱀딸기, 떡꼬치를 팔던 분식집과 그 앞에 쪼그려 게임을 했던 어린시절... 존재했던 흔적마저 사라지고 나서야 마음속에서 영원히 보존된단 모순은 쓴 맛이 났고, 세월은 심지에 붙은 불처럼 유한한 것들을 태워갈 뿐이란 상념에, 야속함을 느꼈다.

약속장소였던 을지로3가는 유독 사라져 가는 것과 대면할 일이 많았다. 을지로3가역에서 계단을 걷고 올라왔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회색으로 물든 흐린 하늘과, 내 키보다도 높은 가림벽이 공사현장을 두른 풍경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지나가는 이를 맞아줄 것만 같았던 식당도, 낡은 오토바이 가게도 모두 사라진 채. 그 공터에는 언젠가 가림벽보다 더 높은 건물이 세워질 것이고 기존에 있었던 상가보다 더 많은 공간이 부여되겠지만, 그것은 원래 머물렀던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될거란 희망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본 세운상가는 평균적으론 꽤 번화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득 1,000달러 999명과, 2900만달러 한 사람의 평균을 더해,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외치는 듯이. 사람이 몰리는 곳과 몰리지 않는 곳이 물과 기름처럼 나뉜 현장에서 우선적으로 선택한 행선지는, 볕이 잘 들지 않는 2층의 오락기기 상가였다. 오락실게임의 추억이 깊었던 아케이드 키즈로서, 이 곳에 발을 딛을 때마다 깊어져가는 서늘함은 서글픈 것이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즐거움을 나눌 터전이 사라진다는 슬픔과, 살아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온 분들의 삶의 방식이 부정당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감정이 섞인 그런 서글픔이었다. 뉴트로니 뭐니 하면서 복고에 새로운것을 입히고자 하는 시도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시도에서 근간을 가꾸어온 이들을 위한 존중이 얼마나 담겼는가를 저울질 해보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같이 동행했던 애인이 주변을 둘러보는 나의 모습을 두고, '사라지는 걸 바라볼 때 그 특유의 눈빛이 있어요.' 라는 말을 꺼냈고, 그 때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일화를 떠올렸다. 자신들의 모습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어했던, 19세기 무렵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부부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사를 찾아가 촬영을 요청한다. 그러나 당시 사진기술은 미진했기에, 상(像)을 새기는데엔 잘 갖춰진 환경에서도 최소 2-3분, 길면 10분-20분이 넘게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시 말해, 부부가 원하는 모습을 사진으로서 남기기 위해선, 표정조차 바꾸지 않는 부동자세로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했던 셈이다. 숏츠와 릴스가 30초를 넘기는 것 조차도 마주하기 힘든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10분은 얼마나 긴 시간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 부부는 짧지 않는 시간을 제법 잘 버티어 기록을 남기는데 성공한 듯 하다. 활짝 웃는 표정으로 긴 시간을 버틸수는 없으니, 표정은 비교적 유지하기 편한 희미한 미소로 고정되었고, 가지런한 자세는 목석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 사진은 정말로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부부의 분투가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사라져가는 풍경이, 그 부부의 모습과 닮아보였다. 풍경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더라도, 최소한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의 모습마저도 오래오래 새겨지기 바라는 것 처럼. 그리고 그 공간에서 아등바등 버텨온 사람들을 잊지 않길 바라는 것 처럼. 그렇기에 나도 사진을 찍는 사진사처럼, 마음의 조리개를 조절하고, 빛에 반사된 낡은 건물과 탁해진 공간을 최대한 눈동자에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없어질지 모르는 그 풍경을, 마음의 상(像)에 맺을 수 있도록.

상가에 볼일을 마친 동행인은 다른곳에 잡힌 약속장소로 이동하였고, 애인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 나는 서울의 도심의 밤을 홀로 거닐었다. 정적과 고요를 벗어나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찬 번화가는 영 적응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면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우리가 살아가는 또다른 터전이란 생각도 들었다.

서울은, 아니 비단 서울 뿐만이 아니어도 내가 살아가고 발을 딛는 풍경은 앞으로도 변할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그 물살에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더욱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자 애쓰려 한다. 내가 정말로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