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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그 외 창작물

최근에 읽은 것들

by offscape 2025. 3. 3.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는 지인분께서 감명깊게 읽었다는 내용을 보고 구매는 했었는데, 정작 읽지 않고 쌓여있던 라이브러리로서 존재하다가 1년 6개월 가량이 지나서야 겨우 소화해낸 장편 소설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였을까. 작품 속 주인공인 ‘해미’가 누군가의 일기장을 읽으며 얼굴도 모르는 이의 족적을 되짚어갔듯이, 나 또한 나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던 파독간호사, 그리고 그 시기에 각자의 이유로 분투하였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는 듯이 편안히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해미가 그랬던 것 처럼, 나 또한 신기루를 구체화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상과 공감은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며, 미숙함으로 인해 긁혀버린 상처도 치유하는 능력이 있으리라 믿기에.


빅이슈 잡지는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행동반경에 빅판분을 뵙기 어렵기도 하여 정작 구매는 많이 하지 못했던 월간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호에 다루는 주제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서 꼭 구매해야겠다 생각했고, 모처럼 합정역 인근을 찾을 일이 있어서 빅판분께 직접 구매했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브로치도 같이 챙겨주셨다.

2025년 2월호인 332호가 집필되던 시기는 (아직까지도 진행중인) 많은 일들로 혼란스러운 시국이었으며,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정치성’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던 내용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과정부터,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는 것까지 정치와 뗄수 없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종종 그 중요성을 잊는 듯 하다. 아니면 잊고싶어하거나.
그래서일까. 지금까지의 빅이슈의 잡지가 그랬듯, 세상이 좀처럼 잘 비추려하지 않은 소중한 가치를 다시한번 끄집어내주는 좋은 글귀들은 몇번을 읽어도 참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세상이란 모순속에서, 선한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가 더욱 절실한 시기라서 그런가보다.

애인님의 소개로 구병모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되었고, 그 덕에 「파과」와 「아가미」를 인상깊게 읽을 수 있었다. 삶과 상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로 대 듯 표현하는 그 묘사력은, 그 이야기의 중심에서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느끼는 듯한 감각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가미」는 내가 읽었던 구병모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고, 축축한 늪에 끝끝내 잠겨버리는 듯한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묘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위에서 언급하였던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는 그래도 어디엔가는 있을법할 따뜻하고 정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작품의 인물은 철저히 변두리로 밀려나버린 존재였고, 그 점이 이 작품의 감상에 무게감을 물씬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를 이어 읽었던 「파과」는 소위 말하는 ’방역업체‘라 불리는 암살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아가미」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비현실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글귀 하나하나에 피비린내가 코 끝으로 느껴질 정도로 흡입력이 좋았다.
애인님 말처럼, 이 두 작품은 타고난 몸은 같지만 서로 다른방식으로 걷는 이란성 쌍둥이같은 감각이 느껴졌고, 나 또한 이 두 작품의 대조성이 썩 마음에 와닿았다. 자신이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대신 비로서 안식을 찾은 「파과」의 주인공 조각과, 타인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저주를 짊어져야 하는 주인공 곤의, 그런 아이러니가.


모종의 사유로 알게된 트친님(맞팔아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구병모 작품으로 화두가 오갔었고, 그 덕에 「파과」의 짧은 후속작이자 프리퀄인 「파쇄」를 빌려읽게 되었다.
주인공 조각이 ‘방역업자’로서 갖춰지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그려낸 작품으로, 그의 스승 류에게서 온갖 비법을 전수받는 과정을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디테일하게 그려나갔다. 위픽시리즈 특유의 (비교적) 간결하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정밀한 메스로 살갖이 도려내지는듯한 아픔과, 그것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새로이 탄생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모순된 감각 또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