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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반11

callasoiled - EMTE 돌이켜보면 callasoiled의 음악은 그의 방식으로 묘사된 심상과 주제의식이 상당히 뚜렷한 편이었으니, 흔히 말하는 '주류'에는 속할 수 없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무척이나 좋아하긴 했지만.) 애시당초 数​の​民​族 부터가 '배제된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고, 뒤를 이어 연달아 나온 음반은 대놓고 멸망을 다룬 Apocalypse 였으니까. 하츠네 미쿠 관련 행사 Digital Stars 2024 디제잉믹스셋을 기반으로 한 初​音​ミ​ク​の​グ​ル​ー​ヴ 정도가 그나마 대중성을 지닌 편이었지만, 이마저도 하츠네 미쿠를 분해해서 그의 방식대로 조립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음반의 제목과 테마가 담긴 티저영상을 보았을 때, 역설적으로 꽤나 기대했던 것 같다. 이미.. 2024. 11. 24.
[음반감상] Room306 - 겹 LayerRoom306 · Album · 2018 · 10 songsopen.spotify.com 「겹」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서로 맞닿아있지만,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그 간극에 대해. 나의 완전한 이해자라는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은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상처 입지 않기위해 가면을 겹치고, 때로는 틈새로 숨어버리곤 한다. 1집 「At doors」에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설레임과 두려움을 그려낸 Room306이, 이번에는 반대로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우리의 삶 부터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까이 한 댓가로 상처입어왔고, 그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겹겹히 감싸는 과정의 반복이니까. 첫 곡인 「인사」에서부터, R.. 2024. 11. 8.
Papillon 0. 나비는 피어 오른다. 꽃잎같은 두 날개에 몸을 싣고. 1. 일렉트로니카 컴필레이션 음반 「Papillon」의 티저영상을 처음 보았을때의 기쁨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bunkai-kei 레이블 & fusz의 계보를 이어주었다는 감사함도 있었지만, 전자음악으로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의 열정이 끝나지 않았단 증거이기도 했으니까. 잔잔한 풍경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음은, 그들의 의지가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butterfly effect라는 관용어도 널리 쓰일정도로, 작은 나비의 날개짓은 고요할지언정, 그 앞에 펼쳐질 변화는 폭풍우를 불러올 수 있을정도로 무한하다. 그러나 나비의 날개짓이 그 자체로 빛나는건 폭풍우를 .. 2024. 5. 4.
数の民族 - 수렴 할 수 없는 존재의 울분을 차곡차곡 담아낸 음악 callasoiled의 「수의 민족」은 토속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증오의 덩어리가 잘근잘근 씹히는 이중적인 맛의 음반이었다. 같은 문화와 언어, 혈통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부외자로 밀려나버린 마음의 분노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민속음악’이라는 양식을 빌렸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민속음악'이라는 양식을 빌린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악곡, 「악습」으로 음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결코 호감에 다다를 수 없는 상대를 향해 거절을 건넨다는, 보카로를 사용한 애니메이션 오프닝풍의 이별노래는 어울리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그럼에도 「악습」이 음반의 시작점이자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건, 거절에서 비롯된 배척이 시작되었음을 읊어주었기 때문이다. 배제된 자의 화려한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듯.. 2024. 1. 12.
ZPPTRAX - Partial recall 턴테이블을 본딴 독특한 기기가 일본 전국 오락실에서 돌아가기 시작한 1997년의 끝은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풍경과도 맞닿아 보였다. 게임으로서 음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단 점은 무척 진귀한 경험이었을테니까. 이 음반은 마치 추억이란 보석함을 열어보는 듯 했다. z pinkpong선생의 레이블 ZPPTRAX를 주축으로, RAM, SLAKE, DJ SIMON등 작곡가가 참가한 풍경은 20년 전 BEMANI 시리즈의 악곡 라인업을 되짚는 듯한 착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BEMANI가 있었기에 존재가 더욱 빛났을 이들이, BEMANI라는 영역 외로 밀려나게 되었단 아이러니는 추억보다 씁쓸했지만. 「추억 팔겠습니다」라는 음반의 캐치프라이즈와 같이 이 음반은 20년 전, 5건비트를 중심축으로 한 BEMANI의 모습.. 2021. 8. 11.
callasoiled - 사고표본(思考標本) 인간은 사고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으나, 신은 그 힘을 남용할 것을 우려하여 인류의 육체를 연약하게 했고, 사고의 결집을 이따금 흐트려 놓았다. 예술가가 존경받는 이유는, 바람불고 햇살 따듯하면 흐트러지기 쉬운 ‘생각’을 뚝심있게 표현해낸 존재이기 때문이다. callasoiled선생의 작품은 음악이란 형태로 정교하게 세워진 그의 세계란 생각을 강하게 받았고, 이 점은 타인에게 그의 음악을 쉽사리 권할 수 없었던 장벽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헤비하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고표본(思考標本)」의 존재가 반갑게 느껴졌다. 해당 원반은 잠에서 깨어나 꿈에서 보았던 흐릿한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을 거쳐(影) 다시 사고가 일시정지(信号)하고 꿈(子守唄)이라 일컫는 잠재의식으.. 2021.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