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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반

callasoiled - EMTE

by offscape 2024. 11. 24.

Environment Material Texture Experience

 

 

돌이켜보면 callasoiled의 음악은 그의 방식으로 묘사된 심상과 주제의식이 상당히 뚜렷한 편이었으니, 흔히 말하는 '주류'에는 속할 수 없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무척이나 좋아하긴 했지만.) 애시당초 数​の​民​族 부터가 '배제된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고, 뒤를 이어 연달아 나온 음반은 대놓고 멸망을 다룬 Apocalypse 였으니까. 하츠네 미쿠 관련 행사 Digital Stars 2024 디제잉믹스셋을 기반으로 한 初​音​ミ​ク​の​グ​ル​ー​ヴ 정도가 그나마 대중성을 지닌 편이었지만, 이마저도 하츠네 미쿠를 분해해서 그의 방식대로 조립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음반의 제목과 테마가 담긴 티저영상을 보았을 때, 역설적으로 꽤나 기대했던 것 같다. 이미 세상을 이루고 있는 너무나도 근원적이고 지나치기 쉬운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까 하는 그런 기대감.

 

 

무의 공간에서, 티끌(particle)이 생겨났다. 티끌은 증식하거나 다른 티끌과 이어지며, 전기 신호가 이어지고 끊김을 반복한다. 티끌은 점점 구조를 갖춰가며 세포(cell)로, 세포는 구조를 갖춰서 생물(microrganism)의 형태로 변모했고, 행성을 가득 덮은 바다(sea)는 살아 숨쉬는 모든 유기체를 품어주는 터전이 되었다. 어느새 바다는 서서히 증발하며 수위가 낮아지고, 살아있는 생명체는 육지라는 새로운 터전에 좌초(stranding)되기 시작한다. 바다라는 터전의 보호에서 벗어나버린 존재들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에 짓눌려 육지의 자양분이 되거나, 하늘을 향해(to sky) 뻗어나가고자 한다. propagate는 곡 제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진취성처럼, 앰비언트 틱한 전체적인 음반의 기조를 환기시키듯 드럼 앤 베이스 틱한 공격적인 어조로 음악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그 뒤를 이은 our sky도 propagate와 더불어 강렬하게 트인 햇살을 뚫고 지나간다는 심상이 잔뜩 느껴지는 곡이었는데, 더 이상 하늘은 지향할 곳이 아닌, 이미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터전은 무한히 뻗어나가는 우주(universe)라는 공간속에서 부유한다.

그렇지만 존재했던 모든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것으로 회귀하고 만다. 육신은 머지않아 생명이 꺼지고, 우주 또한 무한한 팽창 끝에 붕괴에 이르고 사라질 운명을 지니고 있다. all in the phantasm는 존재는 이윽고 환상으로 사라질것이란 허무주의적인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분명하게 그려낸 마지막 트랙이었고, 그렇기에 이 악곡의 끝부분이 더욱 인상에 남았던 것 같다. 생명의 파동이 반복하다 서서히 파동이 느려지고, 이윽고 영원히 멈춰버린 것 같은 그 묘사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 과정을 다루고자 했던 사고표본의 추상성과는 대조 된 듯 하지만, 결국 인간이 사고하는 원천은 육체라는 물질에서 비롯되었기에, 살아있는 존재의 사고(思考)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여 이야기 한것은 아니었으련지.

 

 

음반 속에서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성이 다 좋았지만, 나는 이 음반에서 가장 좋았던 곡을 꼽으라면 sea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callasoiled 방식의 서정성을 대표하면서도, 풍경 너머의 근원으로서 바다를 다룬듯한 독특한 텍스처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그래서 부족하게나마 sea를 들었을때의 심상 비슷한걸, 여행때 보았던 풍경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작곡가의 의도와 얼마나 근접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바다 밑으로 잠겨드는 듯한 먹먹한 감정을 느꼈듯이, 다른 이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EMTE, by callasoiled

11 track album

callasoiled.bandca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