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asoiled의 「수의 민족」은 토속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증오의 덩어리가 잘근잘근 씹히는 이중적인 맛의 음반이었다. 같은 문화와 언어, 혈통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부외자로 밀려나버린 마음의 분노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민속음악’이라는 양식을 빌렸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민속음악'이라는 양식을 빌린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악곡, 「악습」으로 음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결코 호감에 다다를 수 없는 상대를 향해 거절을 건넨다는, 보카로를 사용한 애니메이션 오프닝풍의 이별노래는 어울리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그럼에도 「악습」이 음반의 시작점이자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건, 거절에서 비롯된 배척이 시작되었음을 읊어주었기 때문이다.

배제된 자의 화려한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듯한 「취주」 너머로, 모래사막을 횡단하듯 메마르고 괴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존재하는 누군가이자, 정의 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 마치 사막의 모래알 갯수 자체는 분명한 수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이를 수렴된 숫자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것 처럼. 음반 제목과도 같은 「수의 민족」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로서도 모듈화 될 수 없고, '민족'으로서도 소속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듯, 덤덤하게 걸어나간다.
주인공은 소속에서 나가 떨어졌을지언정, 당장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사막을 걷다가도 푸른 잎이 펼쳐진 야자수를 눈에 담고, 그늘 아래 바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짓눌렸던 자유를 누리고, 두 발을 딛고 나가며 풍경을 아로 새길수 있다는건 어쩌면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배제당했고, 어디에도 소속 될 수 없는 변두리의 존재가 되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슬픔과 울분 모든것을 모래바닥과 하늘을 향해 쏟아붓지만, 결국 흩어진 채 사라져 갈 뿐이다. 오갈 곳 없이 응어리진 감정은 「명정」에서 격렬하게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푸르름이 밀려난 자리에 재처럼 타버린 검붉은 빛이 채워져간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는 집단을 따르지 않은 대가로 벌을 받고 있는것은 아닐까. 집단에 소속될 수 없는 나는 그저 「추악」한 존재는 아닐까 하는. 언젠가 들었을지도 모르는 멸시하고 모함하는 말 들이 마음속에서 퍼져나가고, 이윽고 마음이라는 그릇에 수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버리기 시작한다. 기울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주인공은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 여정의 끝을. 「마지막 종소리」를.

「야만의 색채」는 '집단'이라는 이름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주인공과 같은 운명이 내려질 것이란 구전 동화와도 같았다. '집단'은 여태까지 여럿 존재했던 '주인공'을 언급하며 착취를 어어가고, 이야기는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릴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러나 청자인 우리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존재가 오염되고 풍화되어 문드러져간다는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럼에도 callasoiled 선생은 「수의 권속」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며 이야기를 끝맺음 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목적조차도 모르지만, 그저 무너지지 않도록 자기자신을 가다듬어 갈 뿐이라고. 그리고 무언가를 전하고 싶고 알려주고 싶을 뿐이라고.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calla soiled’라는 명의로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번 음반에도 많은 이에게 통용 될 수 없는 미학을 전달해버렸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울분을 꾹꾹 눌러담은 이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배제된 누군가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으리란 확신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수의 민족」은 친절한 음악은 될 수 없겠지만, 많은 이에게 외면 받을지라도 그 외길을 꾸준히 걸어나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관철된 결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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