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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반

fusz - phos,reconstruqt

by offscape 2020. 5. 23.

 

작년 말 즈음이었나, 2020년이 오면 chouchou 음반을 쭉 쟁여놓을거란 호언장담같은걸 했었던 것 같은데, 결국 2020년 상반기 베스트 셀렉션은 fusz와 ZUNTATA가 차지하게 되었다. 아직 상반기 끝나기 까진 한 달 정도 남았단 사실은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준타타야 메탈블랙-다라이어스-레이시리즈로 정립되어버린 슈팅게이머의 취향이 쭉 유지된거라 치더라도 fusz는 나름 새로운 영역에 발을 담근것 치곤 뜻하지 않게 보물을 건진 기분이라 얼떨떨하긴 하다. 완전한 제로베이스는 아닌것이, 해당 레이블 음반에 참가한 헤드라이너 중 nyolfen선생이 계셨던 덕에 접근성이 용이했던건 부정할 수 없었다. 크로스비츠는 이미 끝났지만 지금까지도 음악취향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는걸 보면, 이것 또한 크로스비츠가 남긴 유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든다.

 

우선 2014년에 발매된 phos. 자켓으로 알맹이 전체를 판단하는건 섣부르다 여기는 편이지만, 당시(그리고 근래)의 동인음악 메인스트림과는 저만치 떨어져 있을거란 생각을 하기까진 그다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킥사운드를 최대한 배제하고 악기를 최소화 함으로서 격양되지 않고 차분한 어조를 쭉 이어가고 있으면서도, 각 악곡마다 갖고 있는 주제를 또렷하게 전달하고 있음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음악 자체는 미니멀, IDM, 앰비언트 등, 이해하기 쉽다고 하기엔 입문장벽이 다소 높은 장르의 구성이지만, 재봉틀로 꽉꽉 짜여진듯한 음의 결집으로 밀어붙이는(듯한) 근래 동인음악 메인스트림과 비교하였을때 물리적으로 듣기 편안하단 사실은 분명한 강점이며, 오히려 음악 사이사이의 텅 빈듯한 공간에 다양한 감상을 투영할 여지가 충분하단 점이 음반의 가치를 높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근작의 동인음반으론 디버스 시스템의 In The Usual Motion 정도가 우선적으로 떠오르긴 하지만, Taishi 선생이 악곡의 반절이상을 담당한 해당 음반에 비해 라인업은 보다 다채롭다. 앞서 언급한 Nyolfen 선생을 비롯하여 Smany, Notuv, Madegg등 분카이케이 레이블 출신이 다수 결집한 덕에 서늘하면서도 보다 무기질적인 느낌이 꽤 짙은편인데, 그 덕분에 사사쿠레 선생의 Emily’s Broken Toy가 가장 튀는 기묘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분명 악곡만 떼놓고 보았을땐 가장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처음 접했을땐 Blur (Cyanotype)가 꽤 인상깊었었는데, 최근들어선 L-Bloom의 연계가 썩 마음에 든다. 서서히 무너져버린 터전 위에, 새로운 무언가가 싹을 틔우는 듯한 표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대강 그런 감상이었다.


Reconstruqt는 phos에서 1년 이후 시점인 2015년에 발매된 음반으로, 현 시점으론 fusz 레이블이 새겨진 마지막 작품이다. ‘재구성’이라는 뜻의 단어 Reconstruct를 뒤틀어 음반의 타이틀로 삼은것에서부터 기존 악곡의 리믹스 음반이란 사실은 쉽사리 알아챌 수 있었지만, 막상 알맹이를 들어본 결과는 감히 ‘리믹스 음반’이라는 단어를 얹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을 정도의 명작이었고, Reinvention 내지 Re-Creation이라 불리는 것이 결코 이상할 이유가 없을 정도다.

리믹스 음악이라 함은 원곡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헤침으로서, 재구성이 불러일으키는 색다른 감흥 내지 기존 악곡에 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이 묘미이자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근래의 동음판은 이 둘 모두를 충분히 충족한 사례가 드물었던 것 같긴 했다. 따지고 보면 메이저판에서도 하나 조차 제대로 못해내는거 보면 그게 말처럼 쉬운 과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반면 Reconstruqt는 놀라울치만큼 두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였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다.

2번 트랙인 Himitsu는 최근 World’s end girlfriend와의 콜라보로 나름 화제를 끌었던 악곡으로, 본 음반에서의 리믹스는 분카이케이 레이블로 디지털릴리즈된 Polyphenic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잔잔한 어조의 사랑 고백이란 기본 틀은 깨트리지 않으면서, 후렴구에 짙게 깔린 베이스 음으로 화자의 비밀을 더욱 신비스럽게 만든 부분이 꽤 신선했다. 5번 트랙인 Crawler는 원곡이 되는 다섯곡을 절묘하게 변형하고 이어붙인 사운드콜라주인데, 장르 이름만 들어도 와닿지 않는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원곡이 되는 것들을 전부 듣더라도 리믹스의 이해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것이 참 기묘하다. fusz/분카이케이 레이블 통틀어서만이 아닌 동인음악 전반적으로 보아도 청해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 곡이 Reconstruqt의 상징이자 fusz가 무엇을 만들고자 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다 대중적인 테이스트를 좋아한다면 Qrion 선생이 재구성한 Repeat Pleasure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원곡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고.

트랙이 7개에 불과해 러닝타임이 조금 짧은 편이고 음반의 통일성이 phos에 비해 다소 낮게 느껴지는 소소한 아쉬움은 있지만, 음악적 성취란 측면에서 보았을땐 phos보다도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이란 의견엔 변함이 없다.


장르보다도 더 큰 진입장벽은 청취경로인데, 본 음반은 fusz레이블의 총괄자였던 trorez에 의해 M3등 오프라인이벤트를 통해서만 판매가 이뤄지고 있으며, 온라인판매는 커녕 스트리밍서비스/디지털음원 구매 서비스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2020년 봄 M3는 팬데믹 이슈로 결석하였기에 입수난이도는 극악에 치닫았을터였는데, 마침 운이 좋게도 스루가야 글로벌을 통해 구할 수 있었음이 천만 다행이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떳떳하지 못한 해적질에 만족하거나 크로스페이드만 들으며 군침을 삼켰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분카이케이도 그렇고, fusz레이블도 동결상태에 들어간건 무척 아쉬운 상황이다. 동결된건 레이블뿐이란 사실은 그나마 다행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Smany선생은 앞서 말했던 것 처럼 World’s end girlfriend와의 협업 등을 통해 지금까지도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Phasma는 Fuwari-chan 유닛으로 지금도 몽환감 넘치는 음악을 꾸준히 들려주고 있으며, Nyolfen선생도 라이브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모든것이 평생 하나로 묶여있을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잠시나마의 결집을 통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되짚을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이 과정으로 견문을 조금씩이나마 넓힐 수 있게 되었음을,

무척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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