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테이블을 본딴 독특한 기기가 일본 전국 오락실에서 돌아가기 시작한 1997년의 끝은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풍경과도 맞닿아 보였다. 게임으로서 음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단 점은 무척 진귀한 경험이었을테니까. 이 음반은 마치 추억이란 보석함을 열어보는 듯 했다. z pinkpong선생의 레이블 ZPPTRAX를 주축으로, RAM, SLAKE, DJ SIMON등 작곡가가 참가한 풍경은 20년 전 BEMANI 시리즈의 악곡 라인업을 되짚는 듯한 착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BEMANI가 있었기에 존재가 더욱 빛났을 이들이, BEMANI라는 영역 외로 밀려나게 되었단 아이러니는 추억보다 씁쓸했지만.
「추억 팔겠습니다」라는 음반의 캐치프라이즈와 같이 이 음반은 20년 전, 5건비트를 중심축으로 한 BEMANI의 모습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나, 충분히 현대적인 표현기법을 썼음은 첫 트랙인 RRR에서부터 바로 알아챌 수 있었고, 가득 채워진 격한 음색은 그 시절의 미니멀함과는 상반된 듯 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이들이 지금도 BEMANI에 잔류했었다면 이런 악곡들을 IIDX를 비롯한 기종에서 연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란, 일종의 if론의 흥미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도 여겨진다. The Dirty of Loudness 후속격인 Unknown의 교과서같은 음겜음악에서 반가움을 느낀것도 이런 연유였고.
음겜세대를 타겟으로 한 추억을 표방한 만큼 MAX-SBY와 같은 음겜(세븐스코드) 보스곡을 실어낸 케이스도 존재하지만, 현재의 음겜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 법한 악곡도 정성스레 담겨있었다. 이 중 Twenty Steps이 단연 주목할 만 하다. 「RETRO FUTURE JAZZ FUSION DISCO」란 수식어 가득한 장르명에서 커피집 머그잔에 와인 따라 마시는 인상부터가 떠올랐지만, 트랙 시작부터 끝나기까지 정겨운 기분으로 들을 수 있었던 곡이었다. 현란함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노련미가 가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하지만 역시 제일 마음깊이 와닿았던 악곡은 DJ SIMON선생의 「미래복고」였다. bm club mix에서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RETROFUTRE를 확실히 매듭지으면서, 추억을 파는 음반인 「Partial recall」의 엔딩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한 이 악곡은, 추억하는 자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다가왔다. 2020년대에 90년대의 사운드를, 이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다시금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았기에 티저 발표부터 기대감이 무척 높았었고, 무척 만족스러운 원반이 완성되어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혹여나 과거 BEMANI의 자취를 되짚는 이가 있다면, 이 음반이 길잡이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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