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er
Room306 · Album · 2018 · 10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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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서로 맞닿아있지만,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그 간극에 대해. 나의 완전한 이해자라는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은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상처 입지 않기위해 가면을 겹치고, 때로는 틈새로 숨어버리곤 한다.
1집 「At doors」에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설레임과 두려움을 그려낸 Room306이, 이번에는 반대로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우리의 삶 부터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까이 한 댓가로 상처입어왔고, 그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겹겹히 감싸는 과정의 반복이니까.

첫 곡인 「인사」에서부터, Room306이 말하는 ‘거리두기’가 시작된다. ’나‘를 찾아와준 누군가에 대해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를 덤덤하게 말하며, 무언가를 전해준 상대방에 대한 감사와 전해받은 따스함의 소중한마음을 전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일도 없고, 다시는 볼일이 없을 것 처럼 읇는다. 주고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전할지언정, 빳빳한 서류봉투 같은 건조함은 듣는 사람까지도 메마르게 만드는 것 같았다.
1집 첫 곡 「Road Movie」에서 ‘우리는 후회하고 상처줄지도 몰라도 하나가 될 수 있어요’라는 대목을 완전히부정하듯, 상처도 후회도 실패도 없지만 서로를 이해할 기회조차도 포기한 그 에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내눈과 귀를 닫은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을 계기로 하여, 마음의 문에 빗장을 채웠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을 지언정, 우리의 마음이 겨울공기처럼 얼어붙게 만든 그 날은 누구에게있었을테니.
긴박하면서도 촘촘히 쌓인 멜로디가 전개되는 「더」는 북적이는 인파 사이로 걸어나가는 ‘나’를 그려내는 듯하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음은 겹쳐지며 오히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에 이르르고, 같은 길 위를 걷는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개개인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든다. 가득 들이찬 것 같지만 숨통을 틜 수 있는 여유가있음에 감사하며, 이 소란속에 잠시나마 ’나‘를 잊어본다. 마치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이.
하지만 목적없는 방황은 막다른 길로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골목에 들어선 ‘나’를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건넨다. ‘괜찮으세요?’라며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 그렇지만 ‘나’는 감사함보다, 타인의 손이 서서히 간격을 좁히며 나의 영역을 침범하였음에 불안해한다. 등 뒤에는 장벽, 앞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 버티는 일 조차도 버거울 뿐이다. 결국 도움을 청한 쪽도, 도움을 받아야 했던 ‘나’도 서로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침묵」은, 이 음반에서 말하고자 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낸, 하나의 서사시 처럼 느껴졌다. 서로가 같은 음악을 들으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그건 마음이라는 저울이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무게추를 번갈아 놓으며 평정을 유지하기 위함처럼 보인다. 침묵의 터전으로 돌아와서야, 마음을 짓누른 무게추를 내려놓고 정돈을 한다. 혹시 나 자신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한 무언가를 잃어버리진 않았나 되살피면서.
세상 모든것을 장막으로 공평하게 덮어주는 「밤」은 그렇게 다시 한번 찾아왔다. 외부의 세계와 나의 경계가흐릿해지고, 검은 형태로 뭉뚱그러지는 밤은 이따금 두렵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야 말로, 나의상처와 슬픔을 꺼내어 보듬어줄 수 있는 소중한 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밤을, 어둠이 내리길, 빛을바라듯 기다린다.
Room306의 음악은 때로는 오밀조밀하게, 때로는 음과 음 사이에 공간을 두며 나의 발걸음에 발 맞춰 주는듯 했다. 슬픔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상처를 줄 까봐 간격을 두며 덤덤히 읊조리는 느낌은 오히려먹먹하기 까지 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이 음악으로부터 상당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긍정이나 부정이라는 평가로서가 아닌, 존재 그 자체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시선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음 속 텅 빈 감정을 덮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작은 위안을 안겨준 이 음악에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2023년 7월 즘 포스타입에 적었던 글을 여기에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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