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이야기

사라져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산책

by offscape 2024. 11. 9.

 

2024년 2월경 포스타입에 적었던 글을 옮김

 


제목을 타이핑 하고 나서야 세상 모든것은 사라져가고 있었구나 라는 진실이 낡은 서랍장에서 새어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잿빛으로 물든 진실을 주섬주섬 주워담으며, 내 곁에서 사라져간 풍경들을 떠올려 본다. 학교를 마치고 터덜터덜 걷던 구불구불한 골목길, 낡은 놀이터 구석에서 피어난 빨간 뱀딸기, 떡꼬치를 팔던 분식집과 그 앞에 쪼그려 게임을 했던 어린시절... 존재했던 흔적마저 사라지고 나서야 마음속에서 영원히 보존된단 모순은 쓴 맛이 났고, 세월은 심지에 붙은 불처럼 유한한 것들을 태워갈 뿐이란 상념에, 야속함을 느꼈다.

약속장소였던 을지로3가는 유독 사라져 가는 것과 대면할 일이 많았다. 을지로3가역에서 계단을 걷고 올라왔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회색으로 물든 흐린 하늘과, 내 키보다도 높은 가림벽이 공사현장을 두른 풍경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지나가는 이를 맞아줄 것만 같았던 식당도, 낡은 오토바이 가게도 모두 사라진 채. 그 공터에는 언젠가 가림벽보다 더 높은 건물이 세워질 것이고 기존에 있었던 상가보다 더 많은 공간이 부여되겠지만, 그것은 원래 머물렀던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될거란 희망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본 세운상가는 평균적으론 꽤 번화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득 1,000달러 999명과, 2900만달러 한 사람의 평균을 더해,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외치는 듯이. 사람이 몰리는 곳과 몰리지 않는 곳이 물과 기름처럼 나뉜 현장에서 우선적으로 선택한 행선지는, 볕이 잘 들지 않는 2층의 오락기기 상가였다. 오락실게임의 추억이 깊었던 아케이드 키즈로서, 이 곳에 발을 딛을 때마다 깊어져가는 서늘함은 서글픈 것이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즐거움을 나눌 터전이 사라진다는 슬픔과, 살아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온 분들의 삶의 방식이 부정당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감정이 섞인 그런 서글픔이었다. 뉴트로니 뭐니 하면서 복고에 새로운것을 입히고자 하는 시도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시도에서 근간을 가꾸어온 이들을 위한 존중이 얼마나 담겼는가를 저울질 해보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같이 동행했던 애인이 주변을 둘러보는 나의 모습을 두고, '사라지는 걸 바라볼 때 그 특유의 눈빛이 있어요.' 라는 말을 꺼냈고, 그 때 나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일화를 떠올렸다. 자신들의 모습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어했던, 19세기 무렵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부부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사를 찾아가 촬영을 요청한다. 그러나 당시 사진기술은 미진했기에, 상(像)을 새기는데엔 잘 갖춰진 환경에서도 최소 2-3분, 길면 10분-20분이 넘게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시 말해, 부부가 원하는 모습을 사진으로서 남기기 위해선, 표정조차 바꾸지 않는 부동자세로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했던 셈이다. 숏츠와 릴스가 30초를 넘기는 것 조차도 마주하기 힘든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10분은 얼마나 긴 시간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 부부는 짧지 않는 시간을 제법 잘 버티어 기록을 남기는데 성공한 듯 하다. 활짝 웃는 표정으로 긴 시간을 버틸수는 없으니, 표정은 비교적 유지하기 편한 희미한 미소로 고정되었고, 가지런한 자세는 목석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 사진은 정말로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부부의 분투가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사라져가는 풍경이, 그 부부의 모습과 닮아보였다. 풍경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더라도, 최소한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의 모습마저도 오래오래 새겨지기 바라는 것 처럼. 그리고 그 공간에서 아등바등 버텨온 사람들을 잊지 않길 바라는 것 처럼. 그렇기에 나도 사진을 찍는 사진사처럼, 마음의 조리개를 조절하고, 빛에 반사된 낡은 건물과 탁해진 공간을 최대한 눈동자에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없어질지 모르는 그 풍경을, 마음의 상(像)에 맺을 수 있도록.

상가에 볼일을 마친 동행인은 다른곳에 잡힌 약속장소로 이동하였고, 애인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 나는 서울의 도심의 밤을 홀로 거닐었다. 정적과 고요를 벗어나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찬 번화가는 영 적응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면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우리가 살아가는 또다른 터전이란 생각도 들었다.

서울은, 아니 비단 서울 뿐만이 아니어도 내가 살아가고 발을 딛는 풍경은 앞으로도 변할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그 물살에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더욱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자 애쓰려 한다. 내가 정말로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