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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2023.10.27-30 도쿄여행기

[2023 도쿄여행기] (2) 변두리 오타쿠의 아키하바라 산책

by offscape 2023. 12. 15.

한중일 대화합 (아님)

 

아키하바라역과 게이머즈 아키바점에 걸린 광고의 작품으로 서브컬처의 트렌드를 읽어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 곳에 (일본 입장에서) 타국의 작품이 큼지막하게 걸릴거라 누가 예상했을까. 작품에 대한 호오를 떠나 블루아카이브와 원신이 걸렸다는 사실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서브컬처의 중심축에 변화가 이뤄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순 있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소샤게와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고, 저 곳에 매달린 작품이 무엇이 되었든간 나에게 어떠한 감흥도 될 수 없을거란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아무튼 먼 비행과 긴 전철길을 거쳐 아키하바라에 도달했다는 기쁨너머엔 허기가 찾아왔고, 무언가를 먹기로 했다. 아키하바라 역에서 가까운 매장 중, 가성비 맛집으로 알려진 나다이 우나토토 아키하바라점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싸고 빠르고 맛있게>라는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저렴한 가격으로 장어덮밥을 파는 매장이다.

 

1100엔이 믿기지 않을정도의 만족스러운 장어덮밥

 

맛있었다. 한국에서 이 만한 장어덮밥을 먹으려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18000원 이상은 나왔을텐데, 생선맛도 깔끔하고 양념도 적당히 잘 배여있는데다가 잔가시가 없어서 정말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고생했던걸 한번에 보상받는 것 같은 행복도 느껴졌다.

 

간간히 식사를 하면서 가게 밖의 풍경을 보았는데, 오타쿠의 거리라고 알려진 아키하바라라는 인상과는 상반되는듯한, 세련된 카페와 깔끔한 상가가 펼쳐진 거리를 볼 수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의 옆길을 둘러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해야할지. 이번 여행은 매 순간순간을 누리는데에 집중하다보니 찍지 못한 장면이 너무나도 많았고, 돌이켜보면 그게 꽤 아쉽다. 

 

 

아키하바라 역 인근 중심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만다라케, 스루가야 등을 비롯한 중고매장도 이곳저곳 둘러볼 수 있었다.  매장에 직접 방문하여 먼지 쌓인 골동품 사이의 옥석을 발견하는 재미 자체는 여전히 즐거웠지만, 꼭 사야겠다 싶을 정도의 무언가는 발견하지 못했다. 원하는건 나중에라도 온라인몰에서 찾아서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기도 했고.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놓칠 순 없지. 변두리 오타쿠로서 아키하바라의 게임센터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방문한 곳은 고전게임부터 음악게임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춘곳으로 알려진 GiGO 3호점.

아키바 일대의 게임장들과 비슷하게 1/2층은 크레인게임, 3층부터는 세가/코나미 음악게임을 비롯한 체감형게임을 다양하게 가동하는 곳이었지만, 이 곳은 타 매장에선 보기 힘든 진귀한 게임들이 있어 더욱 반가운 곳이었다.

 

01
<사라만다>와 <그라디우스>, 그리고 <버추얼온>

 

GiGO 3호점의 RETRO:G 코너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전게임을 중심으로 편성된 공간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에어로시티 등의 옛 캐비넷으로 고전게임을 생생히 즐길 수 있는, 90년대 오락실의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물론 좀더 매니악하게 파고들려면 아키하바라 HEY도 있고, 테이블게임은 나츠게미카도도 있지만, RETRO:G 코너도 충분히 옛 게임의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끌만했다.

 

012
건슈팅 <타임크라이시스 2>와 <THE 경찰관 2>. 건?슈팅? 게임 <타이핑 오브 더 데드>

 

타임크라이시스와 THE 경찰관이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는 곳을 정말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특히 THE 경찰관은 한국에서도 플레이하기 힘들었던 게임이었기에. 키보드워리어가 되어 좀비를 무찌르는 게임 타이핑 오브 더 데드의 게임 존재자체는 오래 전 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기로 보았을때의 당혹감은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난폭운전 권장게임 <크레이지택시>

 

택시드라이버가 될 수 있는 크레이지 택시도 발견. 이것도 거의 10년만에 다시 발견한 것 같은데... 보통의 택시업무처럼 손님을 태워서 데려다 주는건 동일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손님을 데려다 줘야하는 것은 물론, 역주행, 차 사이로 빠르게 지나가기, 드리프트&점프 등의 테크닉으로 손님에게 최대한 많은 팁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이다. 즉 난폭운전 권장게임인 셈이다.

 

다시 봐서 반가운 음악게임들. <키보드매니아 3rd>, <비트매니아 complete MIX 2>, <beatmania III 7th mix>

 

너무나도 반갑게도 코나미의 옛 음악게임도 온전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나의 음악게임 입문 중 하나였던 5건비트 시리즈도 정말 오랫만에 다뤄볼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뻤고. 코나미의 BEMANI 초대작들은, 당시의 음악신(Scene)을 최대한 재현하면서 개성을 넣고자 했던 정성이 듬뿍 들어간, 보물상자와도 같단 생각을 종종 한다.

 

IIDX 초대작과 5건비트 시리즈에서 접할 수 있는 PRINCE ON A STAR

 

반가운 마음에 나도 추억의 곡을 이것저것 둘러보았고, 여행에 동행해준 애인님께도 이런저런 곡을 소개해줄겸 플레이를 권했다. 솔직히 지금의 음악게임과 비교해보면 편의성도 부족하고 판정도 엄격해서 가볍게 즐기기엔 조금 허들이 높은 편이지만, 구작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개성넘치는 악곡들은 더할나위없이 소중하고 만족스러웠다.

 

 

어느덧 호텔 체크인시간이 임박하여 JR선을 타고 다시 긴시초역으로 향했다. 스미다강에 반짝이는 윤슬이 이 날따라 왜이리 아름다워 보였는지. 마음같아선 좀 더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 싶었지만, 새벽부터 이른 출발로 지쳐있던 상황인지라 우선 복귀 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