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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2023.10.27-30 도쿄여행기

[2023 도쿄여행기] (4) 즐거운 덕질의 연속, 아키하바라의 밤. 그리고 압도적존재감의 DDR금기체

by offscape 2023. 12. 29.

 

생각해보면 키노쿠니야 책방에서 양지의 책들을 살펴봤으니, 자연스럽게 아키하바라에서 음지의 책을 살펴볼 필요성 같은걸 느꼈었다. 아키하바라의 동인샵은 대부분 8시즈음 문을 닫지만, <멜론북스 아키하바라 1호점>은 비교적 늦은 시간인 21시 30분까지 영업을 하여, 돌아가는길에 잠깐 들러보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애인님도 어느정도의 체력적인 여유가 남아있어 같이 방문할 수 있었다. 

 

멜론북스 아키하바라 1호점은, 고전 슈팅게임 라인업이 출중하기로 유명한 게임센터, <아키하바라 HEY>가 위치한 건물 지하에 있어 찾기 쉬운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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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북스 아키하바라 1호점의 음악라인업은 동방프로젝트 어레인지 음반이 절대다수였다.

 

멜론북스 아키하바라 1호점은 지하 단층으로 운영되는데다 면적도 좁은 편이어서, 많은 작품을 들여놓는 장소란 인상은 아니었다. 동인샵을 방문할때면 제일 먼저 음반코너를 살펴보는 버릇이 있는데, 안그래도 충분하지 않는 음반코너의 면적 대부분을 동방프로젝트 어레인지가 차지하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하나의 IP에 영향을 받은 형형색색의 다양한 작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순환하는 생태계가 갖춰진건,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다. 슈팅으로서의 동방프로젝트만 약간의 관심이 있는 나로서도 무척 부러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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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북스 아키하바라 1호점은 동인지 위탁판매 위주로 운영되는 듯 했다.

 

돌이켜보면, 멜론북스 아키하바라 1호점은 동인지 위탁판매가 주로 이뤄지는듯 했고, 매장 대부분의 공간은 얇은책을 진열하는데 쓰였던 것 같다. '장르'라는 형태로 원작별로 구분된 책들을 살펴보며 지금 이 순간의 서브컬처 트렌드를 읽어보는 것도 나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의 작품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누군가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전할 수 있단 것 또한 일종의 선순환이라 불릴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서브컬처의 인기척도는 '아가씨의 욕실' 서클의 동인지가 나오는가 여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좁은 면적의 매장임에도 개성도 살아있고 필요한건 잘 갖춰져있긴 했는데... 큰 문제점이 몇 있었다.

문제점1. 매장의 1/3 정도가 성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일반코너와 구분짓는 가림막 조차도 없다
문제점2. 매장입구에 붙은 홍보 포스터들이 낯부끄러운 정도를 넘어 염치가 없어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다
문제점3. 좁은매장&다루는 품목의 특수성 등이 맞물려서 그런지 인구밀도가 꽤 높았다

 

문제점 1이야 일반코너로 최선을 다해 눈과 머리를 돌리면 된다 치더라도, 매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낯부끄러운 포스터들이 여과없이 붙어있는건... 좀 아니지 않나요. 심지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편인 게임센터 건물에 붙어있는데.

서브컬처의 어두움에 어느정도 내성이 생긴 사람들이야 두 개의 관문은 어떻게든 이길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겨냄을 넘어서 무덤덤해진 쪽에 가깝긴 했다) 책을 둘러보는 사람과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은 풍경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고 느긋한 감상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서브컬처의 어두움에 껌딱지처럼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둘러볼만한 곳이긴 하다. 나도 애인님도 질색하면서 나름 즐겁게 구경했었고.

 

 

아침부터 고생이 많았던 애인님은 휴식을 위해 일찍 숙소로 들어갔고, 나는 아키하바라에 조금 더 남아있기로 했다.

그리고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아키하바라 GiGO 3호점에 입장했다.

 

늦은 밤 시간을 내어 게임센터에 발을 딛은건, 일본 현지에서만 가동중인 <DanceDanceRevolution 20th anniversary model>, 통칭 DDR금기체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였다.

<DanceDanceRevolution 20th anniversary model>는 몸을 움직여 플레이하는 음악게임 Dance Dance Revolution 시리즈의 20주년 기념으로서 일본 게임센터에 판매된 새로운 기기로, 더욱 커진 화면과 빵빵한 음향으로 '압도적존재감'이라는 슬로건에 나름 걸맞는 게임환경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해당 기기는 일본 내수로만 유통되는데다, 해당 기기에서만 플레이 할 수 있는 일부 요소가 있는 탓에, 한국에서 DDR의 콘텐츠를 온전히 즐길 수 없게 된 원흉이기도 하다. 이 기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중 하나로 실력검정 코스 '단위인정'이 있었고, 3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 중 어떻게든 시간을 낸 것도 '단위인정'에서 최대한 높은 단을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CLASS SILVER는 뜻밖의 행운이 겹쳐져 미리 취득할 수 있었다.

 

일본으로 여행하기 직전 SILVER 클래스를 어찌어찌 취득했고, 덕분에 단위인정에서 10단까지 도전 가능한 상태로 맘껏 달릴 수 있었다. 목표는 싱글과 더블 양쪽에서 모두 10단 취득. 쉬지 않고 최단속도로 해도 각각 1시간 이상은 걸리는, 고행길에 올랐다.

 

문제는... GiGO 3호점이 게이머가 많이 찾아오는 매장이기도 했고, 외국인 관광객까지도 DDR 순서를 기다리는 상황때문에 게임에 원활하게 집중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서양권 관광객이 대뜸 번역기로 나이트 오브 나이츠를 플레이해달라고 하지 않나... 오락실 폐장시간인 11시-12시에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져갔다.

 

 

그런 이유로 해서 <GAME PANIC 아키하바라점>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쪽도 GiGO 3호점과 마찬가지로 한 건물 전체가 게임센터인 매장으로, BEMANI나 세가 음겜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춰 인지도가 높은 곳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DDR 금기체의 모습

 

다행히 이쪽은 (GiGO 3호점에 비해) 사람이 적은 편이었고, 오로지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어서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우선 싱글 10단 취득을 목표로, 스텝을 하나하나 밟아갔다.

 

싱글 10단 취득. 체력이슈로 설렁설렁 했다.

 

솔직히 싱글 10단은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아침서부터 누적된 피로가 꽤나 커서 클리어 가능한 정도로 대충대충해서 그렇지...

 

 

싱글 10단 취득을 마치고 나니, 때마침 폐점시간이 임박하여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블쪽도 어느정도 진행해두었음 좋았겠지만, 그래도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복귀할 수 있었다.

 

 

긴시초역에서 호텔로 이어진 골목길엔 술집과 유흥주점 등이 많아 밤에 걷기 조금 부담스럽단 이야기를 얼핏 듣긴 했었는데... 직접 목격하고나니 이런 풍경이었구나...싶어지더라.

 

할로윈데이가 임박한 불금을 만끽하는 젊은 사람들과, 매장에 오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종업원까지... 끈적한 기름때같은 찝찝함을 조금 둘렀지만 어찌되었든 호텔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