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북적이는 신주쿠역에서 겨우겨우 빠져나와 후쿠토신선을 타고 니시와세역에 도착했다. 여행 첫째날, 긴시초역에서 스미다강까지 차근차근 걸었던 길 처럼, 인파가 붐비지 않는 풍경에 마음도 차분해지는 듯 하였다. 지역주민의 발이 되어주는 모노레일이 때로는 길목을 건너는 사람을 위해 멈춰서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왠지모를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다.
와세다 대학교가 멀지 않는 주택가라는 특징 외에는 그저 평범한 교외지인 이 곳에 도착한 이유는, 오모카게바시(面影橋)를 들러보기 위해서였다.



본래 에도시대에 놓였던 이 다리는 문헌에도 등장할 만큼 이름난 다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주택가 개울을 이어주는 콘크리트 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 옛적부터 이 곳을 건너온 사람들, 그리고 이 장소와 엮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수 많은 설화들도 있었겠지만, 음악게임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있어선 팝픈뮤직을 비롯한 여러 음악게임에 활동하고 악곡을 제공해준 와키타 준(脇田潤) 선생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서,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https://youtu.be/RTRrwNBFySw?si=UWW8PG1-MzdoocJr
대학을 다니던 작곡가의 추억과 그 당시의 감정을 전하고자 했던 이 음악에 같은 다리의 곡명이 붙은건,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 풍경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가 아니었을지. 작곡가 본인은 벚꽃이 필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일상의 일부로서 녹아들었기에 무언가를 콕 집어서 말할 수 없게 된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니시와세다역에서 오모카게바시까지는 꽤 걸어야했고,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배고파져있었다. 주변에 편의점도 마땅히 보이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주택가 바로 앞에 타코야키 푸드트럭이 보여서 잽싸게 주문하러 갔다. 주문한 메뉴는 갓 구워진 타코야키 위에 마요네즈와 송송 썬 파를 얹은 네기마요 타코야키.
타코야키 사장님과 살짝 대화도 나누었는데, ‘혹시 나오는데 몇 분 정도 걸릴까요?’라는 질문에 ‘30초 정도 걸립니다’라고 유쾌하게 답해주셨던 일은, 주인분과 나도 호쾌하게 웃을 수 있었던 소소한 추억으로서 지금도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10알에 670엔이라는, 조금은 가격대가 있었지만, 정말 맛있게 구워지고 소스와 어우러져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음악게임을 좋아한 덕분에, 그리고 그 음악게임에 수록된 악곡덕분에, 오모카게바시에서의 추억을 이렇게 쌓을 수 있게 되었음에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골목길을 쭉 걸었다. 오모카게바시에서 다카다노바바역까지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고, 왠지 이 고즈넉한 풍경을 여유를 느끼며 기억에 스미고 싶었다. 나와 애인님 둘 다 음악게임을 했던 게이머였기에, ’우리가 걷는 이 길 마치 한성대입구역 주변의 개울가 같지 않나요‘ 라는 말에 애인님도 동감하듯 웃으며 ’정말 그렇네요‘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하늘을 너무 침범하지 않은 주택가. 그리고 그 사이에 고요하게 흐르는 개울. 사람들은 그 안에서 오손도손 살아갈것이다. 오늘을 매듭짓고 내일을 차근차근 그려나가는 일을 반복하며 조금씩 조금씩.


30분 정도 걸었을까. 어느덧 다카다노바바역에 도착하였다. 아까까지의 고요함은 북적임으로 바뀌어가며 사람들의 목소리와 자동차의 배기음, 그리고 기차가 지나가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한가득 섞인 풍경에 우리도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간 것 같았다. 다카다노바바역 사이드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는 곳에 미카도 게임센터의 음료자판기가 체크포인트처럼 세워져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도착한 다카다노바바 미카도 게임센터. 그 전의 방문이 2016년 9월이었으니, 거의 7년만의 일인 셈이다.


미카도 게임센터 1층에는 팝픈뮤직 16 파티, 크래킨DJ등 옛 음악게임도 가동중이었는데, 원래 FINAL 한 대만 가동하였던 5건비트도 2대로 늘려서 운영하고 있었다. 애인님은 팝픈뮤직에 각별한 기억이 더 깊은 사람이었고, 나는 5건비트에 더욱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기에, 여기서 각각 플레이하는 기종이 갈라지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는데…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끽했으니 그걸로 된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ㅎㅎ
지금의 BEMANI기종에선 플레이 할 수 없는 여러 옛 악곡들을 플레이하면서 향수에도 빠져보고, 11년 전 동교동 5건비트 FINAL에서 클리어달성했던 EXPERT+도 다시 도전해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재도전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다음 기회가 있겠지. 괜찮아.


사실 오래전부터 아케이드 게임 키즈였던 나로서는 미카도 1층보다도 2층이 더욱 즐거운 풍경이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옛 슈팅게임들이 늘어진 모습은, 오래 전 오락실에 들러서 적군을 파괴해가며 느꼈던 카타르시스 비슷한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풍경 같은것이었다. 그래서 중년이 된 낡은 게이머 아저씨들도 이곳에 방문하여 추억을 되새기곤 하는것이겠지.

개인적으로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슈팅게임 중 하나인 케츠이도 이곳에 가동중이어서, 오랜만에 스틱을 잡고 플레이해보았다. 성과는 잔0 폭탄0로 간신히 1주를 클리어한 변변찮은 결과였지만. 그래도 타지의 오락실에서 자그마한 성취를 해내었으니 그걸로 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플레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애인님이 내 뒤에서 게임 플레이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2층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아저씨들의 신기한 시선 비슷한걸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긴 미카도 2층이 여성게이머 친화적인 장소는 아니었지…하는 생각이 복잡미묘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미카도는 옛 게임을 온전히 운영하는 보물창고이자, 좋은 게임은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즐거운 기억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다시 이 곳을 찾을 수 있는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에도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길 바라며, 매장 문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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